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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환하게 웃는... ^^*


시험을 마치고 오는 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 귀로 굉장히 경쾌하면서도 낭랑하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랄까 굉장히 애교있으면서도... 녹는다는 표현을 써야하나? ^^;) 문득 고개를 드니 내 앞에 동예복을 입은 여군이 있었던 것. 그리고 남자친구인 듯한 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자 위가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느낌이 ㅋㅋ)

뭐, 얼굴을 보거나 한 건 아니지만... 왠지 참 멋있어보였다. 남자들도 기피하려는 군대를 굳이 가겠다고 지원했다는 그 마음도 참 기특하고... 물론 남자들 대다수가 복무하는 '병'의 신분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멋있다는 감정을 가진 것은 오늘이 처음?! 훗...

대개 주위 여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나중에 뭐할거니? 라는 얘기를 하면 '좋은 남편 만나서 남편 벌어오는 거 먹구 살아야지.' 라는 반응 외에는 들어보지 못한 탓일까?

갑자기 나의 군생활이 생각이 났다...


월드컵의 열기도 서서히 사라져 가던 그 시절.
지난 밤에 깎은 잔 머리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베개를 뒤로 한채 진주의 한 교육사령부에 입소를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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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

* 위 그림의 출처는 네이버 곰신까페(똥꼬쪼지(just1jy))입니다.

우리를 환영한답시고 의장대가 나와서 K2 소총을 돌려댔고 그 중에 띨띨해보이는 한 녀석이 시범도중 총을 떨어뜨리길래 큭큭대며 '저 녀석 X됐다' 라며 웃었다. (내가 웃을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몇시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어지는 부모님과의 작별인사. 그리고 나도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꾹 참고 들어갔던 나. 조교들은 생각과는 달리 존댓말도 쓰고 예의도 차리는구나... 했더니? 부모님의 모습이 없어지자마자 웬걸. 우리를 대하는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쇼생크 감옥과도 같은 그 곳에서 남들 다하는 유격훈련, 화생방 훈련(그 날은 첫 눈이 왔던 날 ㅋㅋ) 등 고된 날도 있었지만 평소받아보질 못했던 부모님의 편지라든지, 동생의 편지도 받고~ 여자친구없는 것들의 부러움을 뒤로한채 여자친구 편지도 받고~ 이쁜 그녀 사진도 자랑하고, 주말엔 속옷 손빨래에 하루하루 꼼꼼히 일기로 낱낱히 기록했는데 동기녀석들이 베낀다고 가져가기도 하고... (다 어디뒀는지 잃어버렸네.)

아무튼 훈련 와중에 간간히 학과장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몇 명의 여군을 생애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한 네 명이었던가? 다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하이톤에 '야 이 XX들아'를 연발하는 여자같지 않은 여자들 ㅡㅡ; 하지만, 단 한 사람은 좀 달랐다. 그녀는 넓디넓은 강당에 서서 이따금씩 딴청을 피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은 이래보여도,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너희들 뿐이야."

훗... 사실 그랬다. 연병장에서 줄지어 행군하다가도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으면, 진흙을 훌쩍 피해 지나다니느라 맞췄던 줄은 흐트러지기 일쑤였고(뒤에서 소리지르는 조교. "야!!") 아침에 구보좀 할라고 하면 그 얼마 안되는 거리 뛰기싫어서 "저 맹장수술했는데요..." 라든지 "발목이 아프다"라던지 갖은 핑계를 대서 빠진 후... 헉헉거리며 돌아오는 우리에게 싱긋 미소 날려주는 꾀쟁이들(이녀석들은 우리보다 아침밥을 빨리 먹고 쉬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ㅎ) 밤에 화장실에 가면 어디다 꼬불쳐왔는지 담배냄새가 슬슬 나고, 집에 가고싶은 사람은 지금 짐 챙겨서 가라고 할 때 스스럼없이 짐을 챙기질 않나(공군은 강제입영이 아니기 때문에 1주차에 퇴소가 가능), 간간히 입실해서 건빵 받아온 애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좀 아프고 싶다!!"고 했었던... 그런 우리들은 TV에서 보던 절도있던 북한의 군사를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나약하더라도 막상 전쟁 터지면 총알받이든 뭐든 할 수밖에 없을테니... 어쩌면 뭐 굳이 곱씹을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였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 말은 우리가 이곳에 왜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군생활 통틀어서 정말 마음속 깊이 다가온 말이었다.(들었을 당시 멍...했다;;) 그래서 그 중위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따로 써놓기도 하고 여기서 얻은 생각으로 글을 써서 부대 내 웅변대회 나갔다가 최우수상 받기도 하고... 그 상은 이후 나의 군생활을 180도 바꿔놓기도 했고... 바뀐 군생활은 내 성격 절반이상을 바뀌게 만들었으니 어휴~ 돌이켜보면 2년 5개월동안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한 마디였네... 믿어준다는 것... 참...

그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나... 그 여군의 뒷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던 듯... (あのボーイブランドがとっても羨(うらやま)ましいんだろう) 돌아오는 길에 빳빳해진 목을 추스르며 정회철 변호사의 '기본강의 헌법' 제 3 판을 찾았는데... 아직인가보군... 훗... 야호~ 그럼, 다음 시험으로 다시 재전진!!

* 아래는 동예복(?)을 입은 모습
* 의외로 우리나라 여군의 사진을 찾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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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왔던 이태란 씨


* 아래는 여군얼짱으로 돌아다니는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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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례가 엉성해서 대위는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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