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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2월 25일 현재 네이버 영화순위 956위


실사판 피구왕 통키를 보고는 우리나라 영화에 굉장한 부끄러움을 가졌던 기억이 남아있던 나. '홍콩도 별 수 없구나'하며 피식 웃는다. 콜드레인 님의 말씀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부자관계는 여기서 시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만 이 작품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 허나 주걸륜은 일년 전에도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리버리스타일 하나 만을 밀고 있었다. ㅎㅎ;;;

굳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을 꼽아내라면 주인공의 집이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너무나 비슷하게 꾸며 놨다는 것... 그 외엔 잘생긴 진관희를 보며 안쓰러움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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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2월 25일 현재 네이버 영화순위 108위


불가능은 불가능일 뿐?

여기서 등장하는 깜찍한 아이디어 '타임 리프'는 비가역적인 시간의 틀을 깨는 새로운 룰이다. 하지만 여주인공인 마코토가 영화 내내 배우는 것은 뉴턴 역학을 연상시키는 타임 리프의 부작용 밖에 없었다. (쩝... 시간초월의 개념은 뉴턴 역학을 넘어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와 함께 논의되는 것인데 말이지.) 결국 이 영화는 오로지 '기존의 룰을 깨는 것은 옳지 않아' 라는 식으로 밀고 간다. 왜 타임 리프를 통한 시너지 효과는 없을까? 타임 리프를 통해 상대가 반사 이익을 얻는 건 없었을까? 어릴 땐 좋을 것만 같았던 그 무엇인가가 어른이 되어보니 아니더라를 느끼는 과정이 '성장'인가?

진정한 성장이란 "그때의 난 어리석었어."라고 고백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이 영화가 적지않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이러한 흐름이 무기력한 현대인의 삶이 투영하는 효과를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흐름상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인 자전거는 가히 최악이다. 브레이크 앞 뒤 모두 고장나다니... 그리고 그 정도 거리를 뒤에 한 명 태우고 가는데 고장을 몰랐다니 말이나 되는지... (설령 고장이 난 걸 그 순간 알게되더라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철길을 향해 달려들까?) 또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등교길에는 여자애가 어떻게 타고 다녔을까? (돌아서 가기엔 너무 늦잠을 자잖아?)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는지 프레임도 낮아 캐릭터 동작이 매끄럽지도 않고 세일러문과 같은 TV 시리즈물에서나 자주 쓰이는 '같은 장면 다시쓰기'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반복되며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가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수준을 더 이상 낮게 잡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 바야흐로 우리가 그들을 따라잡을 타이밍이 온 것이다. 그동안 수준 높은 작품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왔던 일본이지만 이렇게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이야... 이 작품이 국내에서 나왔어도 이정도 호응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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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2월 19일 현재 네이버 영화순위 281위


이 영화는 무려 3번이나
(본의아니게) 극장에서 본 영화다...

뭐 한 마디로...
우연히 재회한 옛 친구 민호(남궁민 役)를...
자신의 유일한 말벗으로 상정한 것이 크나큰 오류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랄까나? ^^;

인생의 방향도 판이하게 다르고 함께해 온 시간 역시 지극히 부족한 데 반해...
쉽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 생각해놓고는 결국 끝까지 그를 믿어주지 주지 못하는...
그런 병두(조인성 役)의 모습은 민호 등을 비열하다 하기엔 뭔가가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믿음의 정도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놈을 친구로 두었다고 성급히 후회하기 전에...
오히려 친구를 믿지 못하는 자신을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친구에 대한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자신의 오른팔 종수(진구 役)로 하여금 배신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니...
병두는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정도는 읽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웃음)

뭐... 그 외엔...
전형적인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여서...
제목 그대로 비열함을 그려내어 뭔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면
조인성 같은 톱스타는 병두 역에 쓰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조인성 때문에 봤긴 하지만... ^^ (너무 좋아~ ㅋㅋ)
초점이 너무 기울어지는 양상으로 흘러서
뭔가 그에 동정심을 안고 지켜보게 될 수 밖에 없는 페이스를 만들어 내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근데... 특히... 살인사건의 발화점이 되었던,
극중 검사의 언행이 내 눈과 귀를 상당히 거슬리게 했다.
스토리상 살인에 타당한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단순한 장치일 뿐일까?

* 첨부된 파일은 비열한 거리 시나리오입니다.

<이야기가 이와 연관하여 굉장히 길어지니... 숨겨 놓겠습니다. ^^ 물론 수정도 필요하고...>

마침 언어논리를 보는 중에...
"배제나 차별은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아래와 같은 글이 나왔다.

『배제나 차별이라는 것이 가령 도덕적 관점에서 유래하는 행위라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며 그것들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방책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배제나 차별이 단순한 도덕적 현상이라고 가정한다면, 도덕과 윤리의 연마에 의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이 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이념적 목표는 우리 자신을 좋은 도덕인이 되게끔 자기 형성을 해 나가는 것으로 설정될 것이다. 그러한 도덕적 방책에 의해 배제와 차별이 극복된다고 확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실로 행복할 것이다.

배제가 부정적 도덕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인간의 존재에 뿌리박은 상태이다. 배제와 차별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형태로 누구나가 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가령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로 순도 높은 도덕의식을 지닌 양심 바른 인간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좋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각자의 의도나 양심의 상태를 초월하여, 혹은 각자의 좋은 의도나 도덕심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배제한다든지 차별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회적 인간이라고 하는 우리의 존재 양식이 갖는 불행이 있는 것이다.』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이 글은 나름대로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결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합리화시키려는 비겁한 변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그보다 더 거슬러 생각한다면 도덕률과 배제·차별이라는 개념에 위와같은 인과관계를 상정하고 시작한다는 자체가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부터 검토해야겠지만 말이다.

(이 내용은 그간 말아톤에서의 장애인의 현실 - 서브 쓰리 달성으로 대변되는 극복과 성취는 이 글에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 이라든지, 사회 주류·비주류 갈등양상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진다.)

설령 이와 같은 흐름이 사회적 인간이라는 토대 위에 생성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인식된다 할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말뚝을 박아버리는 식이라면 그건 분명 지혜롭고 결단력있는 처사가 아닐 것이다.

앞서 논한 비열한 거리에서의 검사의 언행은 픽션일 뿐이지만 이와 비슷한 예로 검사가 전화통화에서 공공연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윽박지르는... 이른바 권력에 의존한 횡포를 주요 내용으로한 TV시사프로를 통해 고발되었던 사례를 살펴본다면 도덕률은 제쳐두고라도 자유, 평등, 박애 이념의 구현 이전에(실현하려는 의지는 있었다고 본다.) 이미 배제와 차별을 통한 인식이 우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에 있었던 김근태 고문의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닌가"라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배제와 차별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간에 당연시하고 있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가 군사 정권에 대항해 악랄한 고문을 무릅쓰고 민.주.사.회.를 이끌고자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 자신이 민주사회를 대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 본래 취지를 잊을 정도였단 말인가?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고철종 기자의 책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틀 속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과 상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배경이 각양각색인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틀을 강요한다. 자수성가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큰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공의 방식이 바뀌지만, 그들은 항상 과거 자신의 틀 속에서 해법을 찾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정치인들이 평소 어떠한 사상으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지는 그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아쉽게도 그 파장은 생각만큼 지속되지는 않는 듯. 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공리주의의 윤리적 관점과 가치 의식으로 나간다면 동물사회와 인간사회의 구분은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반성과 그에 따른 성찰이 없는 '이성'은 빛좋은 개살구랄까나... 때문에 진정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진정 구별되는 존재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우리 사회에 있어서 배제와 차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포기'하고 인정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흐음...
괜한 위화감이나 혹은 거리감을 조장할 수도 있는 이런 말은 사실 매우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아닌이상 나 역시 이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이중인격 - 여기서는, 언행일치가 안되는 것을 스스로가 못깨닫는 상태 - 이라 발목잡힐 수 있는 올무를 스스로 놓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런 것이 두렵다면
어떠한 것도 헤쳐나갈 수 없음을...
그리고 어떠한 것도 비전으로 둘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이상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인정하지만 공산주의의 전례가 무서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있을 수 없다.

* 공리주의 - 행위의 옳고 그름을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에 비례하는 지의 여부에 의해 판단하는 사고,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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