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쓰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보다 눈이 몇 배는 더 좋던 어린 시절. 처음으로 은하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갔던 전라남도 진도 근처의 한 섬에서 말이지요. 그 밤은 태풍이 지나갔던 날이었고 잠잠해진 하늘엔 사진으로만 보던 밝은 별들이 하늘 가득 수놓아져져 있었습니다.

'아, 은하수가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 너무나 아름다운 빛이 제게 쏟아짐을 느끼며 달콤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루 위에 피워진 동글동글한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本当にきれいな天の川

혹시... 은하수 본 적 있으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흐렸다가 밤이 되서 개었으니, 내일은 더 선명하겠지?'

더 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광경을 뒤로하고 눈을 붙였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밤엔 눈을 씻고 보아도 은하수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결국 섬을 떠나기 전날 밤에조차 은하수를 볼 수 없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는 걸까. 왜 만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보고 만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지게 된 걸까. 우리 눈에서 그 영롱한 빛이 더 이상 비춰지지 않게 된 그 때부터 우리 스스로가 만물 중 가장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몇 억년이나 거쳐 흘러온 그 빛이 전해주는 세월의 크기와 우주의 무한함은 세상의 그 어떤 잘난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인데, 서로가 믿지 못하는 그런 슬픈 세상은 우주를 경외할 수 있는 그 기회의 상실로 비롯된 것이 아닐는지.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딘가에서 이곳에까지 전해지는 이 별빛처럼 나의 목소리가 하나하나 울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나는 과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함께 들을 수 있을까? 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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